용기를 내세요.
(사무엘상 17장 44-47절)
2000년도에 중국 상해에 단기 선교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상해에 있는 경찰대학에서 사영리를 가지고 전도를 하면서 한 젊은이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복음을 거절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신을 믿는 것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나이들고 병들고 힘없는 사람들이 믿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흔히들 신앙은 병들고 나약한 사람들이 갖는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고 기도하면 힘없고, 두렵고, 용기 없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경험한 신앙은 보통 용기가 아니고서는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용기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믿음으로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80세에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떠나야 했습니다. 기드온은 135,000명의 미디안 군대를 대적하기 위하여 300명만 남겨 놓고 3만 2천명 중에서 3만 1700명을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들은 모두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도전을 하기 원하십니다.
신앙은 나약하고 겁 많은 사람이 갖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두려움과 맞서는 용기,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에 맞서는 용기, 사단의 권세에 맞서는 용기, 정직하게 살려는 용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손해도 각오하는 용기 등, 믿음의 삶을 살려면 신앙인에게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은 골리앗을 상대로 싸움을 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무모해 보이고, 계란으로 바위 치는 만용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을 향해 조롱하는 말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무시하는 말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거룩한 의분을 냅니다. 그리고 다윗의 용기는 위기에 빠진 민족을 구해 냅니다. 신앙은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용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거룩한 용기입니다. 다윗의 용기는 세상의 야망을 이루려는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스스로 왕이 되려 한 적이 없습니다. 이 골리앗과의 전쟁이 다윗이 왕이 되는 첫 발판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쟁에 나가 영웅이 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의 용기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용기였습니다. 다윗의 용기의 근원은 하나님의 영광에서 오는 믿음이었습니다.
둘째, 자신을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주는 갑옷과 칼을 거부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대표로 나아가는 것인데, 그럴싸한 옷을 입고 가야할 터인데 다윗은 거부합니다. 대신 그는 평상복을 입고 전쟁에 나가기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당당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하는 것 한 가지만 붙잡습니다. 자신을 감추려는 그 모든 것은 오히려 그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짐이었습니다. 대신 그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셋째, 힘의 근원을 붙잡는 용기입니다. 다윗의 용기는 만용(蠻勇)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힘만 믿고 싸우러 갔다면 분명 만용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다윗은 싸워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죽어도 싸워야 할 목적이 있었고 죽음도 불사할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힘의 근원인 하나님을 붙잡을 때 우리는 진정한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용기는 하나님을 붙잡는 용기입니다. 거룩한 용기로 거룩한 비전을 이루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목장 나눔 질문: 거룩한 용기를 경험한 적이 있으십니까? 믿음으로 용기를 내어 결단한 경험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