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헌신
(누가복음 1장 26-38절)
어떤 암닭과 돼지가 동업하여 음식점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사업자명을 “Ham & Egg” 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사업을 진행하던 차에 돼지가 돌연 자신은 이 사업을 못하겠다고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돼지는 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자기 살점을 떼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닭은 매일 달걀을 낳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업에 있어서 닭과 돼지는 분명 다른 헌신을 하였습니다. 닭은 이 사업에 단순히 관여(involvement)를 했을 뿐이지만 돼지는 자신을 헌신(commitment)한 것이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헌신은 ‘관여하는 정도의 헌신’(involvement)이 아닙니다. 내 자신을 드리는 헌신(commitment)을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헌신해야 할까요? 헌신하면 어떤 유익이 주어질까요?
첫째, 헌신하면 가치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만 가치있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가치있는 일에 헌신할 때 가치있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면 가장 가치있고 위대한 일에 헌신하는 것이므로 가치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둘째, 헌신하면 성품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우리의 성품이 저절로 천사처럼 변하거나, 예수님처럼 성숙한 성품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품은 철저하게 헌신과 섬김을 통해서 바뀌어 갑니다.
셋째, 헌신하면 운명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장인의 양떼를 치던 목자였으나 그가 헌신할 때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숨어서 포도주 틀에 밀 타작을 하는 농사꾼이었으나 그가 헌신할 때 위대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일에 헌신하면 위대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일에 헌신함으로 작고 평범한 삶에서 위대하고 놀라운 삶으로 바뀌어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는 나사렛이라는 갈릴리 변방에 사는 젊은 여인이었습니다.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나이 어리고, 겁 많고,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할 때 성모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에게서 위대한 헌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어떤 헌신이었을까요?
첫째, 위험한 헌신이었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천사의 말대로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갖게 되면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작게는 정혼자인 요셉에게 버림받을 수 있었고, 마을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헌신할 때 그녀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모든 헌신은 Risk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될 것 같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위험을 안고 순종할 때 위대한 헌신이 됩니다.
둘째, 겸손의 헌신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소식을 듣고 이렇게 반응합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38) 자신을 여종으로 낮출 때 온전한 헌신이 시작됩니다. 교만한 자는 결코 위대한 헌신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자신을 낮추심으로 헌신하셨습니다(빌2:7-8). 예수님의 헌신이 위대한 것은 그 헌신이 참으로 겸손한 헌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의 헌신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들의 말을 듣고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고 헌신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온전한 헌신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어떤 헌신도 할 수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헌신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비전의 헌신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준 메시야에 대한 비전에 헌신하였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거룩한 비전에서 시작됩니다. 헌신하기 전에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비전을 가지세요. 나의 비전이 나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대한 헌신을 하게 됩니다.
목장 나눔 질문: 오늘 내 삶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