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야 하는 이유
(요한복음 3장 16절)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여행자가 높은 산에 등산을 갔다가 발이 미끄러져 벼랑 아래로 떨어지다 가까스로 썩은 나무뿌리를 붙잡고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쳤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어요? 나 좀 살려주세요!” 그러자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주 너의 하나님이다.” “당신이 거기 계시다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저를 구해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이 구해 주겠다고 말씀하시며 줄을 하나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줄이 자신이 붙잡고 있는 나무뿌리에 비해서 너무 가늘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 이 줄 말고 다른 줄은 없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는 나를 믿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럼요. 주님, 믿고 말고요.” 주님께서는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가 정말 날 믿는다고?” 여행자는 크게 소리쳤습니다. “제가 얼마나 당신을 믿는지 모르실 거예요.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정말 나를 믿는다면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그러자 한참동안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행자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다른 이 없소?”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일해 주시는 하나님만 믿으려고 합니다. 때로 내 생각이나 기대에 어긋나게 일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보다 내 생각에 맞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 나서려고 합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그 구원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자꾸 이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이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전 1500년 경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노예로 살고 있었습니다. 약 400년간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그들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집트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씨를 말려 버리려고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런 상태로 몇 대를 지나가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역사에서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라는 아이를 준비시키십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여야 되는 살벌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 왕의 공주의 손에 자라게 하셨고 나중에 이 아이가 자라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믿고, 순종함으로 구원과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종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구원하셨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들,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질 수 밖에 없던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약 2000년 전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헤롯왕은 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베들레헴 지역의 두 살 미만의 아기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들을 통해 미리 그 사실을 알고 이집트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면 될까요? 첫째,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이 구원의 이야기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둘째,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셋째,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사람들이 믿고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목장 나눔 질문: 우리의 믿음은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내가 내려 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