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신앙생활이 우리의 삶에 귀찮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쉬고 싶을 때에도 쉬지 못하고 예배 드리러 가야 합니다. 피곤하고 지치지만 목장 모임에 참여하고 또한 섬겨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도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마음 한 구석에 항상 기도와 전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살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음주나 흡연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마음껏 즐기고 살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편한 신앙생활을 우리는 왜 유지해야 할까요? 여러가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감당하는 이유는,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복이 있으며,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 신앙의 불편함들이 우리를 죄악으로 빠지지 않도록 영적으로 지켜주는 거룩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귀찮고 힘들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멈추면 위험해 집니다. 예를 들어 생업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멈출 수 없기에 우리는 감당해 냅니다. 삼시 세끼 밥 먹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지만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오래전 장모님이 편찮으셔서 아내가 한국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아이들 걱정하지 말고 한국에 다녀오라고 해서 한달 정도 다녀 온 적이 있었는데, 아내가 없으니 집안이 난리가 났습니다.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아우성이고, 온 집안이 어질러져서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한끼를 먹으면 다음 끼에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였습니다. 먹는 것이 이렇게 고민이 되는 줄 몰랐습니다. 아침 먹고 나면 점심 준비하고, 점심 먹고 나면 바로 저녁 준비하고, 저녁 먹고 나면 청소하고 정리하고... 먹는 것이 얼마나 고민 되던지요. 그래서 집사람에게 전화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보 집안일이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했어, 나는 없어도 되지만 당신이 없으면 절대 안되겠어” 그래서 그 이후로 입에 발린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여보 귀찮으면 그냥 대충 먹자, 힘든데 대충 먹으면 되지”라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내가 저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귀찮다고 안 먹나요? 귀찮다고 안 하나요?” 맞습니다. 귀찮아도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고, 귀찮아도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영적인 삶도 그와 같습니다. ‘기도의 삶’, ‘예배의 삶’, ‘전도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듣는 소리가 ‘기도하세요’, ‘말씀 읽으세요’, ‘예배 시간에 빠지지 맙시다” 라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영적 생활이 우리를 영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어갑니다. 요한 3서 1장 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이 강건한 삶입니다. 잘되는 삶입니다. 귀찮아도 빠뜨릴 수 없는 삶이 개인적인 경건생활 입니다. 아마존 강에 가면 물살이 너무 거세서 건너기 힘든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곳의 원주민들은 그 강을 건널 때 항상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건너 간답니다. 그래서 한 선교사가 궁금해서 물었답니다. “그냥 맨몸으로 건너도 건너기 힘든 곳을 어떻게 그렇게 무거운 돌을 메고 건너가느냐?” 그랬더니 원주민들이 이야기하기를 “아무리 무거워도 이 돌이 우리를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메고 가야한다.”고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급 물살처럼 흘러가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무겁고 거추장스럽다고 신앙을 던져 버린다면 우리는 결코 거센 타락의 물살을 이겨낼 수 없을 것입니다. 독수리는 아무리 무거워도, 거추장스러워도 자기 몸뚱이보다 더 큰 날개를 버리지 않습니다. 범선이 대서양을 건너갈 때 아무리 귀찮아도 돛을 팽개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독수리의 커다란 날개가 창공을 가르고 날게 하고, 범선의 거대한 돛이 배를 빠르게 움직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귀찮고 힘드십니까? 그래도 신앙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건생활이 여러분이 죄악으로 빠지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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