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일 주보자료
야고보서의 주제는 행함입니다. 믿음이란 교리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삶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약 2:14). 그래서 1장에서는 개인적인 행함을 이야기 했다면 2장에서는 관계적인 측면에서의 행함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교회 안에서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 차별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회 구조는 노비와 평민과 귀족으로 나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종과 주인이 함께 있었습니다. 교회에 주인 성도가 들어오면 종인 성도는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교회만 나가면 다시 종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교회는 오늘처럼 거대한 건물이 있는 교회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좀 큰 개인 가정집에서 모였을 텐데, 교회에 귀족이 전도되어 오면 종들은 당연히 자리에서 서 있을 수 밖에 없고, 귀족 새신자는 상석에 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예 출신의 새신자가 오면 앉을 자리도 내어주지 않고 서 있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어떤 따뜻함이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모습으로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그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선언을 한 것입니다. ‘차별하지 마라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이며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9절). 정말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신분과 계급이 분명한 시대에서 교회 안에서의 신분과 계급을 파괴하는 발언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이러한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차별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은 차별되는 것을 가치있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려는 이유 중에 차별화되기 위해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특별 대접을 받고 싶은 욕구때문입니다. 하지만 차별하면 공동체가 깨어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의도적으로 교회 안의 성도들을 부를 때 내 형제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사회적인 신분의 호칭이 아닌 형제, 자매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문화적으로 이것이 잘 안됩니다. 젊은 친구가 어른에게 찾아가 ‘형제님’ 이러면 버릇이 없이 느껴지는 문화라서 호칭을 위하여 직분을 주고, 그 직분을 호칭으로 사용하다 보니 직분이 마치 신분이나 계급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직분으로 불려지는 교회 문화가 교회를 주도하려는 싸움으로 번지고, 불화와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직분이 호칭이 아닌 책임으로 다가와 한국 교인들의 헌신의 강도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교회 안에 차별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별은 직분에서만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목장에서 VIP를 초대할 때도 벌써 차별을 합니다. 저 사람은 우리 목장에 어울릴 사람, 어울리지 못할 사람... 그 형제가 변화되어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져 갈 것에 대한 기대보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가 힘들어질 것을 고민하며 초대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차별입니다. 나에게 붙여준 VIP를 내가 걸러 낸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차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첫째, 주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영광을 보지 말고 주님이 주실 영광을 보라는 말입니다. 1절에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늘 영광을 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보고 고개 숙이지 말고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편견의 안경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꾸 세상적인 편견으로 교회 안에서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차별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의 안경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말고 복음의 능력으로 사람을 봐야 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셋째, 긍휼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13절에 자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자비가 바로 긍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교회에도 영혼을 볼 때 이러한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보라고 가르쳐줍니다. 차별하면 않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자격을 따지지 않으시고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형제를 이러한 눈으로 웰컴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