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묵상(2022년 3월 2일)
광야에 서야 하는 이유
누가복음 3장 1-6절
2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선포하였다.(눅3:2-3)
400년의 침묵을 깨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합니다. 침례 요한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이며(참조 사 40:3), 성경에서 말한 약속된 엘리야(참조 말 4:5; 마 11:14)였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를 종결 짓고 새로운 신약시대를 여는 선지자(참조 마 11:12~13)로서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당시 지도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해 시대적 상황을 정확히 밝힙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시대는 정치적으로 아주 혼란스럽고 종교적으로 타락한 시기였습니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광야에서 경건한 삶(1:15)을 살던 요한은 구별된 삶으로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은 세상을 향해 회개를 선포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침례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3절).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었으며, 새로운 삶으로 거듭남의 고백으로 회개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 사람들을 영적으로 깨우고 준비시키는 것이 요한이 감당할 사역이었습니다. 이제 신약시대의 사람들이 회개함으로 주님을 기다렸듯이, 신약시대 이후 교회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죄악이 관영하고 악한 세상 속에서도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감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은 이 사역을 위해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사실 요한은 사가랴 제사장의 아들이어서 아버지 집에 머물러만 있어도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으로 당대에 인정받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커리어를 내려 놓고 광야의 빈들로 나갔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광야에서 더욱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화려하고 복잡한 예루살렘 속에서는 주님과 깊은 사귐을 가질 수 없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광야로 나갔습니다. 오늘 우리도 잠시 광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빈들에서 주님과 깊은 사귐을 가지며 주님의 말씀과 위로를 경험하고 나의 죄 됨을 철저히 고백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의 광야, 나의 빈들은 어디입니까? 아웃백으로 가야 광야와 빈들로 나아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내가 조용히 주님과 대면하여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빈들이고 광야입니다. 내가 세상의 모든 욕망과 탐욕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때로 주님은 우리를 인생 광야에 세우십니다. 외로움과 고난의 광야에 세우십니다. 그 광야에서 온전히 주님을 뵐 수 있기를 바라고, 나에게 주신 사명을 재발견하는 시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주님, 편안하고 안락한 예루살렘을 내려 놓고 광야로 나아갔던 요한의 신앙을 본 받기 원합니다. 비록 그 곳이 춥고, 외롭고, 고달픈 곳이라도 그곳에서 주님을 뵐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축복의 자리이고 영광의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광야 같은 인생의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주님을 바라보며 이겨내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 속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