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비밀을 찬양하라 (로마서 11장 25-36절)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는 서 태평양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Mairiana Trench)라고 합니다. 수심이 약 11034m나 되는 엄청 깊은 바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을 거꾸로 세우고 그 위에 한라산을 얹은 것 보다 더 깊은 곳입니다. 이 깊은 바다 속은 아직도 신비 그 자체라고 합니다. 비록 과학적 장비로 그 깊이는 측정할 수 있지만, 그 속에 무엇이 살고 있고,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여도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하지만 인간이 아는 것은 지극히 얕은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만 두고 우리는 사람의 마음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다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도 다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이 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있을까요?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우주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은 하나님의 마음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계획, 능력과 지혜와 지식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지성으로 하나님을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믿음으로 알고 순종함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바른 방법이며 자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을 알라고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한 비밀을 알기를 바랍니다.”(25) 하나님의 신비는 절대로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알라는 말일까요? 여기서 말한 앎은 하나님을 탐구하고 실험해서 알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함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얼마나 신비한지, 하나님의 신비함 그 자체를 알고 인정하여 드리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한 하나님의 신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의 신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그래서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그 하나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어떻게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구원은 이해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오늘 본문의 유대인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이 완고해져서 복음을 거부하자 하나님은 유대인의 불신을 통해 이방인을 구원하시고 이방인의 수가 찰 때 결국 유대인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신비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의 주권을 내어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신비를 알고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언약적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언약을 먼저 하심으로 우리가 믿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는 역설적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당신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유대인을 버리심으로 이방인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인을 통해 다시 유대인을 구원하십니다. 셋째는 주권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구원에 있어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인됨을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신비를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 즉 풍성하심을 찬양해야 하며, 하나님의 그 놀라운 지혜를 찬양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마음을 찬양해야 합니다. 목장 나눔 질문: 내 삶에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믿게 된 놀라운 사건을 간증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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