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로마서 9장 4-16절)
흔히 하는 오해 중의 한 가지는 부모님이 믿으니 자녀들은 당연히 믿을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믿음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부모님이 신앙이 있다고 자녀가 저절로 신앙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목회자 모임에 가면 기도제목 중에 자녀들이 믿음 갖게 해 달라는 기도제목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신앙은 문화가 아닙니다. 신앙의 문화와 배경 속에서 자랐다고 저절로 신앙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모태신앙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모태신앙이라 할지라도 그 자녀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은 강요에 의해서 되지 않습니다. 혈통과 가문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과 개인적인 만남이 있고 개인적인 고백이 있어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신앙에 있어서 많은 유리한 점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언약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믿음의 조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의 족보 가운데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스라엘이라고 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누가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첫째, 약속의 자녀여야 합니다(6-9절).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듯이,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여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무엇인가요? 9절에 보면 그 약속은 내년에 사라에게서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라에게서 난 자녀가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난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약속의 자녀는 믿음으로 됩니다.
둘째, 택하신 자녀여야 합니다(10-14절). 구원에는 이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인간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구원이 있습니다. 인간의 측면에서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믿음이 우리의 구원의 공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은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할 것은 오직 믿음 뿐이라는 말입니다. 구원은 내 공로가 전혀 없습니다. 무엇을 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믿는 것 뿐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측면에서의 구원은 택하심입니다. 수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당신이 구원하실 백성들을 택하셨습니다. 그 택하심에는 어떤 자격조건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탁월해서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격이 있어서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측면에서의 구원은 오직 은혜일 뿐입니다.
셋째, 긍휼함을 받은 자녀여야 합니다(15-16절). 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싶어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성품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말이죠.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받은 이유는 우리의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구원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목장 나눔 질문: 3가지 하나님의 자녀됨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