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열심
(로마서 9장 30절 ~ 10장 4절)
신앙생활에서 열심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개역) 신앙도 열정과 열심이 있어야 섬김과 헌신을 할 수 있고 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이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그 분의 열정을 보면 함께 가슴이 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염려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열심에는 위험요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있는 그 열심이 지나치거나, 잘못된 일에 사용되면 그 열심이 사람들의 관계를 깨기도 하고,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열심이 있으면 문제가 생기니 열심을 갖지 말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열심과 열정이 나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열심과 열정을 바른 열심으로 바꾸어야 가야 합니다.
잘못된 열심은 기분과 감정에 따른 열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분이 좋으면 열심을 냅니다. 그런데 기분이 상하면 그 열심이 금방 식어버립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어 버립니다. 또한 잘못된 열심은 그 동기가 잘못되었을 때 나타납니다. 히틀러의 나치주의나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주의가 그렇습니다. 잘못된 동기로 시작된 열심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신천지나 여호와 증인과 같은 이단들도 열심은 대단하지만 잘못된 신앙에서 시작되었기에 그 열심은 수 많은 교회들을 흔들어 놓고, 수 많은 영혼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열심은 바른 열심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자기의 혈육인 유대인들로 인해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으나 그들의 열심이 오히려 구원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열심으로 율법을 준수하지만 열심이 오히려 자기의 자랑이 되어서 정작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않고 그들의 구원에 걸림돌이 되어 버렸던 것이죠. 바울이 말한 유대인들의 잘못된 열심은 무엇인가요?
첫째, 믿음에 근거하지 않고 행위에 근거한 열심이었습니다(9:32).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시작이 되셨고, 구원의 완성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거부하고 자기 노력과 열심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 것이죠. 그들이 믿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라 자기 열심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신앙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믿음에 근거하지 않는 신앙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믿음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올바른 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열심이었습니다(10:2).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알았지만 지식으로만 알았지 경험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지식’이란 ‘그노시스(γνωσις)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지식’은 에피그노시스(ἐπίγνωσις)입니다. 에피그노시스(ἐπίγνωσις)란 총제적인 지식, 즉 경험적 지식을 말합니다. 진정한 열심은 하나님을 경험함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순종하지 않는 열심이었습니다(3). 유대인들의 열심은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를 앞세우면서 결론적으로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들은 불순종하는데 열심이었던 것이죠. 우리의 열심은 순종을 위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교만하여져서 불순종하는데 열심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 안에서 어떻게 바른 열심을 낼 수 있을까요?
첫째, 믿음 안에서 열심을 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알아가는 올바른 지식 안에서 열심을 내야 합니다.
셋째, 순종을 위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목장 나눔 질문: 나는 요즘 무엇에 열심을 갖고 있나요? 나의 신앙은 바른 열심 안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