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3일
사람들은 유익이 되는 것과 유익이 되지 않는 것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갈까요? 당연히 유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유익이 되는 것보다 무익한 줄 알며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TV와 성경 중에 우리는 성경이 유익한 줄 알면서도 TV를 선호합니다. 커피와 보약 중에 당연히 보약이 유익한 줄 알지만 저는 커피를 더 선호합니다. 짜고 매운 것보다 싱겁게 먹어야 함을 알면서도 저는 짜고 매운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유익한 것을 아는 것과 유익한 것을 실천하며 사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유익을 모르지 않습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 참 변화를 가져다 주고,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며, 어려움과 환난 중에 힘과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신앙의 유익을 알면서도 실제로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삶에 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같은 밥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피가 되고 살이 되게 먹는 사람이 있고 어떤 분은 정말 안 먹느니만 못하게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어떤 사람은 감동과 변화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시간만 낭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의 태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마음의 태도로 그 일을 대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귀해도 그 분에 대한 마음의 태도가 다르면 신앙의 유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할 까요? 어떤 마음의 태도가 중요할까요?
첫째, 주님을 절실히 필요로 하십시오. 신앙은 주님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해야 진짜 신앙이 시작됩니다. ‘주님 아니면 안됩니다’라는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필요로 해야 합니다. 내 힘과 노력으로 하다보면 지치고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주님을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 주님과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주 만나야 합니다. 신앙이 유익이 되려면 주님을 항상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유익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유익하지 못합니까? 그리스도에서 끊어지는 것이 유익하지 못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중략)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 주님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자세로는 어떤 유익도 누릴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은혜(恩惠)를 잃어버리면 유익하지 못합니다. 본문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은혜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쌀이 떨어지면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은행 잔고가 부족하면 근심합니다. 몰고 가는 자동차에 주유등이 들어오면 불안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은혜가 떨어지면 그보다 더 심각한 위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삽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요. 오늘도 살아갈 수 없는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도 은혜를 잊으면 배은망덕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5절에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구하는 삶이 은혜 충만한 삶입니다.
묵상질문
1. 신앙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 믿어 좋은 이유가 있습니까?
2. 내 신앙의 현재 상태를 점수로 표현한다면 몇 점이나 될까요? 이유를 나눠 주세요.
3. 내 신앙의 회복을 위하여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