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
(로마서 13장 11-14절)
오늘 본문은 로마서의 실천편(12-16장)에 속하는 내용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 잠에서 깬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면 침입해 오는 적들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 중 하나인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이 만리장성은 말을 타고 국경을 넘어와 양식을 약탈해가는 흉노족이나 몽골족과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입니다. 길이가 무려 칠천 킬로미터에 높이가 9미터 폭이 5미터에 달하며, 그 위에는 방어하는 군사들까지 있어서 도저히 뚫을 수 없는 성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엄청난 만리장성이 완성 된 이후에도 유목민들이 숱하게 쳐들어왔고 약탈은 계속되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만리장성에는 여러 곳에 들어가는 문이 있었는데, 성벽을 무너뜨리거나 뚫지 않아도 성벽을 지키는 이들을 매수하여 뇌물을 주면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요즘은 그 후손들이 만리장성의 벽돌을 한 장씩 빼서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만리장성을 쌓아도 지키는 이가 깨어 있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밖의 대적보다 우리 안의 원수 같은 죄성이 우리를 무너뜨릴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로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이 가까워졌다’는 말은 3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구원의 근접성’입니다. 쉽게 말하면 미래 구원, 즉 종말이 가까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종말에 대하여 참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렵고 피하고 싶은 종말, 그러나 성경은 종말을 구원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날은 우리의 회복의 날이며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주님이 곧 오신다고 했는데, 2000년이 지나도 주님이 오시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베드로후서 3장 8-9절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의미로 설명하며, 하나님의 시간 개념이 우리와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은 더딘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하시기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구원의 완전성’입니다. 구원이 가까웠다는 말은 다른 의미로 우리의 구원이 완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가는 시간입니다. 즉, 구원의 때가 가까웠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더욱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삶으로 증명이 됩니다. 세 번째는 ‘구원의 소망성’입니다. 즉,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조금 더 인내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구원의 날이 가까이 왔으니 좀 더 깨어서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날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할까요?
첫째, 어둠의 행실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바울은 12절에서 이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어둠의 행실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위해 낮에 행하는 것처럼 단정히 행하며, 연회와 술취함에 빠지지 말고, 음행과 방탕하지 말며, 싸움과 시기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옷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옷 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 이 땅의 것에 집착하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에 취하여 살면 우리는 결단코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목장 나눔 질문: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하여 현재의 삶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