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음에서 생기는 믿음 (로마서 10장 17-21절) 지금은 은퇴했지만 생태생물공학을 가르쳤던 강병화 교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한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야생 들풀들의 씨앗을 채집하는데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신 분입니다. 그분이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잡초란 없습니다. 모두가 귀한 식물인데 어디에 나느냐에 따라서 잡초가 되기도 하고 화초가 되기도 합니다. 예컨데 밀밭에 벼가 나면 벼가 잡초가 됩니다. 그리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밀이 잡초가 되기 마련입니다. 아마 산삼도 원래는 잡초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심기었느냐, 그리고 어떤 열매를 맺느냐, 어디에 가치를 두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디에 심겨져 있는 인생입니까?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안에,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 심겨질 때 우리는 잡초의 인생이 아니라 귀하게 존중받는 화초의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17절) 즉, 온전한 믿음은 들음에서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11장까지 유대인의 구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왜 선택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신앙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요? 로마서 10장에서 바울이 지적한 유대인들의 신앙의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열심은 있는데 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바른 지식이 없는 열심은 위험합니다. 바울이 이전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구원에 대한 참 지식을 깨달았을 때 그는 바른 지식이 없는 유대인들의 열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의를 믿지 않고 자기 의를 믿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기 의만 믿고 살면 하나님의 의를 믿지 못합니다. 여기서 말한 하나님의 의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속죄하심의 의를 말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내가 얼마나 의롭게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죄의 문제가 주님 안에서 해결 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의를 믿고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경고한 것입니다. 셋째, 바르게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경 지식을 의지했고, 그래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습니다. 그들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은 들어보지 못해서도 아니고(18), 알지 못해서도 아닙니다(19). 그들이 바르게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듣는 것이 바르게 듣는 것인가요? 어떻게 들어야 성숙한 믿음에 이를 수 있을까요? 첫째, 나를 위한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고, 많이 읽고, 많이 들어도 그것이 나를 위한 말씀으로 듣지 못한다면 그 말씀은 나에게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둘째,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말씀을 판단하고 걸러냈습니다. 믿고 싶은 것은 믿고, 이해되는 것만 믿었습니다.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복음이 복음이 되지 못했습니다. 셋째, 복종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지식의 유희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듣고 행하기 위함입니다. 넷째,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이해하도록 가르치시고, 들은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목장 나눔 질문: 말씀을 듣는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요? 혹시 고쳐야할 나의 태도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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