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주 가사원장님이신 강승찬 목사님이 대양주 홈페이지에 신앙의 회복 탄력성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이 시대의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글이라고 생각되어 정리해서 올립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꿋꿋하게 다시 튀어 오르는 능력'입니다. 나무로 만든 공은 탄성이 약해서 바닥을 치고 튀어 오르지 못합니다. 유리로 만든 공은 바닥에서 깨어져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나 탄성이 강한 농구볼은 바닥에 떨어뜨리면 바닥을 치고 더 높이 튀어 오르듯이, 갑작스런 인생 역경으로 인해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기적처럼 다시 회복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복탄력성'은 위기나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이나 긍정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역경을 이겨낸 긍정적인 정서'입니다. 이처럼 인생의 바닥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이 회복탄력성입니다. 우리에게도 신앙의 회복탄력성이 요구됩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지친 우리에게 회복탄력성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길가의 꽃들이 사람들의 손을 통해 한순간에 꺾이듯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공동체에서, 목장에서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경험을 적어도 몇 번은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허들 앞에서 헉헉거리며 넘어질 것인가? 가뿐히 인생의 허들을 뛰어넘어서 도약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인생의 허들을 가뿐히 뛰어넘는 힘은 회복탄력성에 있다고 말하기에 우리는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신앙의 회복탄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회복탄력성을 만들어갈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키워갈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신앙의 회복탄력성을 키워갈 수 있을까요?
먼저, 자아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와 정혼한 순결한 신부, 성령님의 성전, 하늘나라 시민권자라는 정체성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이런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사도바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위험에 처하고, 부당한 대우를 수없이 당했어도, 다시 복음을 들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항상 감사하며(살전5:18),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뇌신경과 얼굴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근육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표정은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창문이라고 합니다. 감사가 넘치고 긍정성을 향상시키면 얼굴 표정이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졸업앨범 사진에서 밝은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30년 후에 미소 짓지 않은 친구들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업에서 성공한 사례가 많았다고 합니다. 공동체의 분위기도 목사의 표정이 아니라 각 성도들의 표정으로 만들어집니다. 복음에 뿌리를 둔 긍정성을 향상시키는 성도들이 많아지면 공동체는 밝아지며 영향력있는 공동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삶의 태도입니다. 긍정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은 쉽게 감사할 수 있지만, 부정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은 감사하며 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정서는 전염성이 강해서 감사의 해독제로 항상 삶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또한, 감사한다는 것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에게 감사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에 시련 속에서 기도응답이나 섬김을 받을 때 혼자 기뻐하기보다 공동체 식구들과 감사를 나눠야 하고, 감사가 흘러 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의 분위기가 밝아집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구원도 감사가 넘치고 긍정적 분위기가 충만한 교회에서 더 잘된다는 것입니다. 비신자들이 교회를 방문했을 때, '내가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 나도 잘 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긍정성에 기초합니다. 이 긍정성이야말로 성숙한 영성의 최종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