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묵상(2022년 5월 18일)
성도야 일어나라
누가복음 8장 49-56절
49예수께서 아직 말씀을 계속하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선생님을 더 괴롭히지 마십시오." 50예수께서 들으시고 나서,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딸이 나을 것이다." 51그리고 그 집에 이르러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그 아이의 부모 밖에는, 아무도 함께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52사람들은 모두 울며 그 아이에 대해 슬퍼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울지 말아라.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53그들은 아이가 죽었음을 알고 있으므로, 예수를 비웃었다. 54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아이야, 일어나라." 55그러자 그 아이의 영이 돌아와서, 아이가 곧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먹을 것을 아이에게 주라고 지시하셨다.
56아이의 부모는 놀랐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다.
예수님께서 12년간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고치시는 동안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원래 가시고자 했던 행선지는 이 회당장의 집이었습니다. 회당장에게는 12살쯤 된 외동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병들어 죽게 되자 예수님을 청하여 치료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딸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딸이 나을 것이다."(50) 딸은 이미 죽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황망해 하는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려움이 밀려오면 믿음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회당장이 예수님을 청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딸이 죽고 나자 모든 것이 끝이 났다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눈 앞에 펼쳐지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만 믿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일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것 같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창조주이시고, 참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이 일에 있어서 회당장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죽은 회당장의 딸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죽었다고 말하는데 왜 예수님은 죽은 딸에게 잔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일차적 의미는 주님이 금방 그 딸을 살리실 것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보면 주님은 우리들에게 죽음에 대한 다른 개념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생각하기를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에도 두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육적인 죽음과 영원한 죽음입니다. 육적인 죽음은 자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끝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원한 죽음은 정말 끝입니다. 영원한 죽음에서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죽음이 진짜 죽음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성도에게는 육적인 죽음이란 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이 곧 오실 때 깨어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죽음을 바라봐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삶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육적인 죽음은 죽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죽은 소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시고 “아이야 일어나라”라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그 죽었던 소녀는 깨어납니다. 주님이 오실 날 잠자던 성도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성도야 일어나라”라고 말입니다.
기도
주님,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 땅의 작은 일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