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19장 28-30절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앞장서서 걸으시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다. 29예수께서 올리브 산이라 불리는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30말씀하셨다. "맞은쪽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타 본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큰 아이가 어렸을 적 ‘Top Gear’라는 영국 TV프로그램을 자주 보면서 자동차에 관심이 아주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픽업해 줄 때면 줄곧 자동차 이야기를 하곤 하였는데,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자동차를 설명하며 ‘그 차는 가격이 얼마나 되고, 얼마나 좋은 차인지’를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끝에 꼭 묻습니다. “아빠,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를 사주면 어떻게 할꺼야?” 그러면 저는 늘 “사주면 고맙지, 그럼 나는 그 차를 팔아서 4WD로 된 튼튼한 차를 사서 타고 다니며 나머지 돈은 선교에 쓸 거야” 라고 대답을 했고, 큰 아이는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대답을 하곤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성공의 가치는 종종 ‘얼마나 큰 집에서 살고, 얼마나 좋은 차를 타는 지, 얼마나 고액의 연봉을 받는 지’로 평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도 과연 그럴까요?
보통의 유대인 남자들처럼 예수님은 규례를 따라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수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방문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이번 방문은 단순히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이 땅을 구원할 메시야적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방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약 3.5km떨어진 ‘베다니’란 곳에 이르자, 예수님은 제자 둘을 시켜서 맞은편 마을에 가서 한번도 타보지 않는 나귀가 묶여 있을 테니 그것을 끌고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귀를 타셨을까요? 그 첫번째 이유는 예언의 성취를 위함 이었습니다. 스가랴서에는 메시야가 오시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슥9:9) 두번째 이유는 겸손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 땅을 정복한 세상 임금들은 백마와 병거를 타고 팡파레를 울리며 성에 입성하겠지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실 그리스도는 겸손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겸손한 모습으로 입성하시고,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겸손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화려함으로 당신을 높이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빌2:6-9)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좀 더 닮아가며, 더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기도
주님,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이 땅 가운데 내가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주님, 종으로 하여금 더욱 겸손하고 낮아진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겸손하고 낮아짐으로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