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가의 거룩한 고민
창세기 27장 1-14절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아들아, 저주는 이 어미가 받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가서, 두 마리를 끌고 오너라." (창27:13)
His mother said to him, 'My son, let the curse fall on me. Just do what I say; go and get them for me.'
이삭은 늙어서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삭은 맏아들 에서만을 불러 자신을 위하여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주면 축복하겠다고 말합니다. 당시 족장의 축복은 모든 자녀들을 모아놓고 행하는 공적인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만약 이삭이 정상적으로 축복을 하려면 에서와 야곱을 모두 불러 축복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늘 사냥한 고기로 자신의 입을 즐겁게 하는 큰아들 에서만을 불러 축복하고자 합니다. 아버지가 장남을 사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본문이 있기 전에 창26장에는 에서가 이방 여자들(헷 사람 유딧과 바스맛)과 결혼한 것이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26:35,36). 즉 이삭은 에서의 영적인 상태가 장자의 영적 의무를 이어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에서만 축복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죠. 믿음의 조상들에게 장자의 축복과 의무는 앞으로 이어갈 구원 역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의무를 가졌기 때문에 반드시 영적인 상태가 고려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삭은 눈이 멀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육적인 눈도 멀었지만, 영적인 눈도 흐려진 상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주려고 했던 축복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던지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후에 에서가 속은 것을 알고 남은 축복이라고 달라고 하자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빌어주었기 때문에 남은 복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즉 이삭은 원래부터 야곱에 대하여 배려하고 남겨둔 축복이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삭의 안중에는 야곱이 없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알게 된 리브가는 눈먼 이삭을 속여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고자 합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염소 새끼 요리를 아버지에게 가져다주고 자신을 에서로 속여 축복을 받을 것을 권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야곱은 형은 털이 많지만 자신은 털이 없으므로 아버지가 자신을 만질 때 들켜서 저주를 받게 될 것을 염려합니다. 리브가는 아버지가 야곱의 거짓을 알게 되어 오히려 저주를 하게 되면, 자신이 그 저주를 받겠다고 하며 염소 새끼를 가져오도록 합니다. 야곱은 리브가의 말대로 염소 새끼를 가져오고 리브가는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만듭니다.
왜 리브가는 자신이 저주를 대신 받는 한이 있어도 남편을 속이고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하였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리브가는 태중에 두 아들이 있었을 때 형이 아우를 섬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즉 그녀는 하나님의 뜻이 야곱에게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에서의 영적인 상태가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에서는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여 이방의 우상들을 섬기며 영적으로 무너져 있었던 상태였을 것입니다. 셋째는 남편 이삭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즉 이삭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히 설 수 있도록 영적인 모험을 강행한 것입니다. 결국 리브가의 이러한 헌신과 영적인 판단으로 하나님의 자손의 계보가 온전히 서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온전히 이루어가는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리브가가 남편을 속인 것 자체는 옳은 방법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녀의 지혜가 없었더라면 이삭의 영적인 권위는 바닥에 떨어지고 그는 실패한 영적인 조상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흐려지면, 영적인 판단이 흐려집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세상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이삭과 같이 인간적인 정(情)에 이끌려 영적인 판단이 흐려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