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이 먼저입니다.
창세기 24장 22-49절
그런 다음에, 노인에게 밥상을 차려 드렸다. 그런데 노인이 말하였다. "제가 드려야 할 말씀을 드리기 전에는, 밥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반이 대답하였다. "말씀하시지요."
Then food was set before him, but he said, 'I will not eat until I have told you what I have to say.' 'Then tell us,' Laban said.
리브가는 집으로 달려가 아브라함의 종에 관한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했고,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이 우물로 달려가 아브라함의 종을 영접했습니다(30). 라반은 그 종을 집으로 모셔드리고 그 앞에 진수성찬을 베풀었습니다(31-32). 그런데 종은 자기가 드려야 할 말을 전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33). 그는 800km가 넘는 먼 길을 왔기 때문에 피곤하고 배고프고 지쳤을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음식을 먹고 쉰 후에 천천히 주어진 일을 수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쉬지 않고 일한다고 해서 누구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었고, 먼저 먹고 휴식을 취한 후에 맡겨진 일을 하더라도 누구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가 온 목적을 먼저 말하지 않고는 밥상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뜻하신 곳이 아니면 대접받지도 않겠다는 결단일 것입니다. 종은 하나님께 물으며 이삭의 아내감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이 하나님이 뜻하신 집이라면 거하겠지만 하나님이 뜻하신 집이 아니라면 떠나겠다는 의지인 것입니다. 만약 이 집에서 그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대답을 미적거린다면 아마도 그는 이 집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단호히 떠났을 것입니다. 쉼도 필요하고, 먹을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머물지 않겠다는 종의 모습 속에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시1;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 된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 속에서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진정으로 필요합니다.
둘째는 나의 필요보다 주인의 필요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먹고 쉬고 안식을 누리는 것보다 주인이 주신 사명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필요보다 주인의 필요에 더 민감한 종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충성되고 신실한 종의 모습을 봅니다. 과연 나는 나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필요에 더 민감한 종인지 돌아봅니다. 아브라함의 종의 이러한 자세는 결국 가장 최단 시간 안에 리브가를 데리고 이삭에게 돌아왔고, 이삭이 결혼하여 가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행 20:24). 또한 고린도교회에게는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하였습니다(고전 4:2).
결국 노종은 먼저 자신은 아브라함의 종이라는 신분을 분명히 밝히고(34), 그 후 그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하게 진술했습니다. 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하신 일(35), 노년에 믿음으로 아들을 낳은 일과 그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물려 준 일을 증언했습니다(36). 고향 땅에 오게 된 이유(37~41)와 기도하여 응답을 받고 리브가를 만나 이 집에 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생생하게 말했습니다(42~48).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택하셨으니 가부간 결정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49).
그의 신실한 이야기를 들으며 리브가의 가족은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설득시키는 힘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습니다. 변화는 한 사람의 언변에 있지 않습니다. 설득과 변화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날 때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