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도 믿지 못할 복
창세기 17장 16-19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겠다. 내가 너의 아내에게 복을 주어서,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들이 그에게서 나오게 하겠다." 17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나이 백 살 된 남자가 아들을 낳는다고? 또 아흔 살이나 되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18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19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여라. 내가 그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그 언약은, 그의 뒤에 오는 자손에게도,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창세기 17장 16-19절)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주시고, 그 언약의 표로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후 또 약속하시기를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에게서 여러 민족을 다스리는 왕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아브라함이 땅에 얼굴을 대고 웃습니다. 이 웃음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너무 황당함에 나온 웃음일 것입니다. 자기 나이 100살, 사라의 나이 90살인데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너무나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미 손주에 증손주까지 보고도 남을 100세나 된 할아버지가 아기를 낳는다니 누가 들어도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이야기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그 웃음은 기쁨의 웃음이었을 것입니다. 분명 너무 황당하고, 당혹스런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도 기쁜 상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럴리 없겠지만 정말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무나 행복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며 살기를 바랍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 말씀은 고마우나 이스마엘로 만족하오니 이스마엘에게나 복을 주십시오.”라는 뜻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 말을 정중히 거절하십니다. “아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 그리고 그 아이가 바로 언약의 아이이며, 그 뒤에 오는 자손도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듣고도 믿지 못할 복이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복, 바로 그 복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25년이란 긴 시간을 기다렸고,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마음속에서부터 포기해 버린 그 약속을 하나님은 이루어 주십니다.
듣고도 믿지 못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듣기만 해도 행복해서 웃음이 나올 응답을 예비하시고 부어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나의 삶에 이러한 복을 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런 복을 주실 하나님을 믿고 오늘도 인내하며 나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길 원합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 이렇게 찬양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편23:5) 원수가 지켜보는 앞에서 자기에게 상을 베풀어 주시고,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워주실 하나님을 믿고 찬양했던 다윗, 하나님은 그것을 실제로 그의 삶에 이루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소망하며 기대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염려와 근심 내려놓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