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교만하게
출애굽기 10장 1-11절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내 앞에서 교만하게 굴려느냐? 나의 백성을 보내서,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출 10:3)
하나님의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강퍅함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잠시 고집을 꺾는 것 같았지만 고난이 지나가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이 있기 전에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 보내 경고하게 하십니다.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내 앞에서 교만하게 굴려느냐? 나의 백성을 보내서,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네가 나의 백성을 보내기를 거절하면, 나는 내일 너의 영토 안으로 메뚜기 떼가 들어가게 할 것이다.”(3,4) 모세를 보내서 말하게 하신 ‘언제까지 교만하게 굴려느냐?’는 말씀은 단순히 바로에 대한 경고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경고입니다. 인간의 교만은 좀처럼 꺾이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금방 움츠러들고 의기소침해서 겸손해진 것 같다 가도 조금 살 만해지면 금방 교만이 고개를 쳐듭니다. 인간의 교만은 작게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 자랑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이것이 커지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심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기까지 합니다. 교만은 뿌리 깊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숨어있는 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교만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너무나 빠지기 쉬운 죄입니다. 교만은 영적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할 때도 찾아옵니다. 때로 하나님을 위해 섬기고, 헌신하는 중에도 생겨납니다. 그래서 교만은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바로의 강퍅함이 좀처럼 꺾이지 않자 바로의 신하들이 바로에게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언제까지 이 사람(모세)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함정이 되어야 합니까? 이 사람들을 내보내서 그들의 주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임금님께서는 아직도 이집트가 망한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7) 바로와 같이 교만하고, 고집세고, 강퍅하던 바로의 신하들도 하나님의 무서운 재앙을 체험하고 그 분 앞에 고집을 꺾으며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년 남자들만 데리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들과 딸, 노인과 가축까지 모든 것을 데리고 나간다는 것을 듣고 분노하며 호통을 칩니다. “너희와 함께 있는 너희의 주가 나를 감동시켜서 너희와 너희 아이들을 함께 보내게 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10)라고 말하며 모세와 아론을 쫓아내 버리고 맙니다. 바로는 신하들의 강권에 자신의 뜻을 꺾는 듯 했으나, 모세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인 순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바로와 같이 전적인 순종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순종의 기준은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마음이 동하는 한도 내에서 순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정해 놓은 것을 뛰어 넘는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만 순종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헌신 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인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묵상 기도
하나님, 제 안에 찾아오는 교만의 죄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는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제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는 자랑과 교만이 거룩의 옷을 입고 겸손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님 앞에 제 자신을 내려 놓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여 가시고, 종을 더욱 겸손케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