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묵상(2022년 5월 25일)
‘어차피’와 ‘반드시’
누가복음 9장 21-27절
21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셔서,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22말씀하셨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 23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6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27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차피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겠지만, 여기에 ‘어차피’가 아니라 ‘반드시’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것은 일반적인 고난과 죽음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고난’과 ‘사명이 있는 죽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엄청난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후(21), 당신은 ‘반드시’ 고난 받고,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22). 여기서 우리가 묵상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입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죽으실 것이라는 말은 주님이 당하실 고난과 죽음이 목적이 있는 고난이며, 사명이 있는 죽음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주님이 말씀하신 ‘반드시’ 속에는 고난과 죽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는 부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죽음만이 사명이 아니라 부활 역시 주님의 사명이셨음을 말씀해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당시의 제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겠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어차피’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기 마련이겠지만, 그 ‘어차피’에 사명을 더하여 ‘반드시’로 바꾸어 놓는다면 우리 삶의 가치는 분명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고난을 이야기하시면서 제자들에게도 고난 받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23)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존심으로 살아가는데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때로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마음의 상처를 늘 갖고 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내가 져야할 고난의 무게가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며 살아갈 인생이라면, 두렵다고 피하기보다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을 위해 정면으로 대면하는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부활의 소망,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26) 우리의 인생이 주님이 부끄럽게 여기시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자랑이 주님이 되기를 소망하고, 주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담대히 전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주님, 조금 힘들고 어렵다고 원망하며 불평했던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해 가며 자존심이 조금 상하였다고 속상해 하며, 그것을 마음에 품고 영적인 침체에 빠져 있던 모습이 있다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