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가끔씩 기억이 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청년 하나가 큼직한 가방을 들고 통로 한 가운데 버티고 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목에 힘을 주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에게 좋은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칫솔입니다. 한 개에 2백 원씩 다섯 개가 묶여있습니다. 딱 천원입니다. 뒷면에 영어로 Made in Korea라고 쓰여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 됐을까요? 망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한 개씩 돌려보겠습니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칫솔뭉치를 사람들에게 돌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분주하게 차내를 돌고 나서 다시 가운데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칫솔 2개 팔았습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예! 실망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포기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다음 칸으로 갑니다!" 승객들이 폭소를 터뜨리는 가운데 그는 유유히 다음 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실망스런 현실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 칸으로 건너가는 그 젊은이의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실망스런 일들이 가득합니다. 기대했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 경우도 많고, 노력했지만 노력의 열매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창피함과 수치심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단 말입니까? 그렇다고 포기하고 좌절할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계속 좌절의 칸에 머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다음 칸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을 품고 다음 칸으로 건너갑시다. 다음 칸에 희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죽을 뻔하다 구사일생으로 아랍상인들에게 팔려 이집트 보디발 장군 밑에서 종살이를 합니다. 희망도 없고 그 자리를 벗어날 길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주인을 섬깁니다. 요셉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는지, 보디발 장군이 그를 믿고 자기 집의 모든 재물을 관리하는 직분을 줍니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파리 목숨과 같은 종의 신분으로 주인의 아내를 탐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무슨 희망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그의 바닥과 같은 삶에도 제2막은 시작됩니다. 감옥에서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을 만나게 되고, 나중에 왕 앞에 나아가 국가의 위기만 아니라 고대 근동지역의 대기근을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제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일국의 총리가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그늘이 드리우고, 실망과 좌절감에 억눌리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 실망의 칸을 벗어나서 다음 칸으로 옮겨가십시오.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십시오. 그 칸에서 실패하면 또 다음 칸으로 옮겨가면 됩니다. 아직 기차가 종착역에 다다르지 않았고 설사 종착역에 다다랐다 할 찌라도 다른 기차로 옮겨가면 됩니다. 기차가 종착역에 이르고 그 기차가 막차라 할 찌라도 내일이면 또 다른 기차가 희망차게 움직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편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아직 다음 칸은 가보지도 않으셨잖아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항상 좋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애썼는데 결론은 우리에게 실망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뭐 어쨌단 말입니까? 우리는 가야 할 분명한 목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