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때로 산다는 것을 당연시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살아 숨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선물일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요즈음 같이 전염병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 수 백 명씩 죽어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매일의 생존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빌려주신 시간이요, 그의 소유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목적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뚜렷한 목적이나 소신 없이 인생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골은 “죽음의 신이 당신을 노크할 때 당신은 당신의 생명 광주리에 무엇을 남겨 놓았는가를 생각하라”고 했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남기며 가야 할까요? 윌로우 크릭 교회를 담임했던 빌 하이벨스는 자신이 후일 사람들에게 “교회 성장 전략가나 위대한 교회 건설자로 기억되기 보다는 가슴과 사랑의 사람(a man of heart and compassion)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위대한 업적 보다는 삶의 향기와 감동을 남기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성취만을 인생의 열매로 생각하는 한, 참된 가치를 남기며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케이스를 보십시오. 그가 이 땅의 삶을 마칠 때 남긴 것이 무엇이었나요? 큰 조직이나 건물을 남긴 것도 아니고, 초대형 교회나 재력을 남긴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 한 개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럼에도 그 십자가가 미친 영향이 얼마나 엄청났습니까? 역사의 방향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살아야 할 가치와 생명의 소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것이 참된 열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헛된 영광을 위해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가치가 아니라고 역설하면서도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열심히 갑니다. 생의 마지막 날이 왔을 때 허무해 할 것을 뻔히 알면서 말입니다. 카트린 제나베가 고백한 것처럼, “삶은 하나의 선물이다. 이것을 분명히 할 때 욕망의 덫에 걸리지 않고 바르게 살 수 있을 것” 입니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참된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 마지막에 이렇게 선포하며 마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고전15:58) 부활의 삶을 소망하며 살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활의 삶을 바라보며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수고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복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망권세 이기고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허락하신 참으로 귀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한 영원한 삶은 시간의 길이를 강조하기보다, 삶의 질을 더 강조한 말입니다. 이것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 즉, 크로노스(Chronos)로서 영원한 삶을 가리키기보다 매순간 특별한 의미를 가진 시간으로서의 카이로스(Kairos)를 강조한 것이죠. 우리에게 부활은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삶이 카이로스의 삶이 되려면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이 중요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주신 목적과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갈 때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삶이 진정한 의미의 카이로스의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삶은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삶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고생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안타까움과 치솟는 물가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 살아 나가시는 소망가족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