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묵상(2022년 5월 27일)
믿음이 없다는 것은?
누가복음 9장 37-43절
37다음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니, 큰 무리가 예수를 맞이하였다. 38그런데 무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소리를 크게 내서 말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보아주십시오. 그 아이는 내 외아들입니다. 39귀신이 그 아이를 사로잡으면, 그 아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또 귀신은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40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그들은 해내지를 못했습니다." 41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하겠느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42아이가 예수께로 오는 도중에도,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악한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셔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내려오셨을 때 많은 무리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기의 외아들을 도와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외아들이 귀신에 들려 소리를 지르고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 거품을 흘린다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는 또한 제자들에게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으나 소용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탄식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하겠느냐?”(41) 예수님이 탄식하신 것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아이를 회복시킬 능력이 없는 것을 보고 탄식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탄식하신 것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인해 탄식하신 것입니다. 수많은 능력과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자라나지 않는 그들의 불신앙을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불신앙을 보시고 탄식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것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우리의 불신이야말로 주님을 가장 슬프시게 하는 죄입니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은 큰 죄로 여기지만 믿음이 없는 것은 죄로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죄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믿음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불신은 결단코 작은 죄가 아닙니다. 불신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을까요? 제자들은 전도 여행 때 귀신을 쫓아낸 경험들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전의 경험을 의지했고 그 경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온전한 믿음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자세를 갖게 되면 그때부터 믿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불신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의 힘으로 하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바로 불신입니다. 오늘도 내 힘과 경험을 의지하기보다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영적인 능력은 한번 덧입었다고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늘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때 우리의 영적인 능력을 잃지 않게 됩니다. 지속적인 기도의 삶이 영적인 능력을 잃지 않는 비결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오늘도 기도로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주님, 오늘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이 세대에 필요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종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오직 종을 통해 성령님이 일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