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넘어 사역으로
사도행전 13장 13-14절
13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건너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이르러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에는 바울과 바나바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처음 출발할 때에는 마가 요한도 함께 하였습니다. 하지만 키프로스 섬을 떠나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을 때 함께 사역하던 마가 요한이 돌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바울 일행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마가 요한이 왜 돌아갔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신학자들은 몇 가지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우선 당시 바울이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걸려서 사역의 방향을 바꾸어 북상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젊은 마가 요한은 지치기도 하고 또한 고향이 그리워 돌아갔을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다른 하나는 마가 요한과 바나바는 친척 관계인데 사역의 초기에는 바나바가 주도하다가 점점 바울이 사역을 주도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마음에 편치 못해서 떠났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마가 요한이 바울이 전하는 이방인 중심의 신학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여 신앙적 갈등으로 떠났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떠났는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바울과 마가 요한 사이에 분명한 갈등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5장 37-39절에는 2차 전도여행 출발 전에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데려가려고 제안하자 바울이 그것을 반대하고 이일로 서로 다투어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사역적으로 서로 갈라서게 됩니다.
사역을 한다는 것은 때로 외적인 어려움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적인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외적인 어려움보다 내적인 어려움들이 우리의 마음에 더 큰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외적인 어려움은 함께 마음을 모아 이겨낼 수 있는데 내적인 갈등은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하여 더욱 지치게 하고, 사역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부 갈등은 서로의 작은 의견들이 조율이 되지 못하여 갈등을 일으키고, 그것이 커져서 갈라서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가 요한이 떠난 것은 참 마음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바울과 바나바는 이러한 내부 갈등을 이유로 사역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마가 요한은 떠났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맡겨진 사역지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 흔들리지 않고 주어진 사역을 감당합니다. 특히 바나바는 이 일 이후에 사역의 주도권을 바울에게 넘겨 주고 바울을 따라 묵묵히 1차 전도여행을 끝까지 감당해 갑니다.
때로 주님의 일을 할 때 우리 안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본문을 통해 몇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모두가 나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마가 요한과 같이 약한 모습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나와 다른 것이 나의 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 있다고 서로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둘째, 대화해야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충분한 대화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커지기 전에 나의 불편함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가 요한과 같이 돌연 떠나버리면 맘의 상처만 커질 뿐입니다.
셋째, 사역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사역을 방해합니다. 때로는 사역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끝까지 사역을 지속해 갑니다. 2차 전도 여행에 잠시 갈등이 있었지만 훗날 마가 요한은 사도 바울과 함께 다시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기도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해 감에 있어서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감정을 건드려 실망하게 하고, 사역의 의미를 잃게 하고,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겠지만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셔서, 감정을 이겨내고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