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잃다
창세기 23장 1-2절
사라는 백 년 하고도 스물일곱 해를 더 살았다. 이것이 그가 누린 햇수이다. 그는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눈을 감았다. 아브라함이 가서, 사라를 생각하면서, 곡을 하며 울었다.(창23:1,2)
Sarah lived to be a hundred and twenty-seven years old. She died at Kiriath Arba (that is, Hebron) in the land of Canaan, and Abraham went to mourn for Sarah and to weep over her.(Gen23:1,2)
아브라함은 일평생 자신을 주라 부르며 섬기던 아내 사라를 잃었습니다. 당시 사라의 나이 127세였습니다. 슬픔이 얼마나 컸던지 아브라함은 곡을 하면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이 땅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이라 할지라도 이 땅에서의 이별은 예정된 수순입니다. 모두가 이별을 알고는 잊지만 생각하려 하지 않을 뿐입니다. 언젠가 벌어질 일이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믿고 살뿐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는 10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10살이 적은 사라가 먼저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나는 것은 나이순이 아닙니다. 그 말은 우리의 젊음이 이 땅에서의 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가 주 안에 있을 때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소망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땅에서의 이별은 마음 아프고 서운하지만 주 안에 있으면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잠시 잠깐의 이별일 뿐입니다.
공항에 가면 눈물로 허그하며 이별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사람들은 잠시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사합니다. “잘 가고, 다음에 보자. 내가 연락할게” 공항에서 이별을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할 수 있는 인사들입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가 이 땅에서 속해 있기 때문에 이런 인사가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속해 있으면 이런 인사들이 가능합니다. “잘 가고, 또 보자, 주 안에서 서로 마음으로 연락하며 지내자”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안에 있으면 이별은 잠시 잠깐이지만 주 밖에 있으면 이별은 영원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은 ‘그 날을 생각하고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그 날을 무조건 모른다고 부인 하거나, 나와 상관없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땅의 삶은 생각보다 짧고 빠르게 흘러갑니다. 현재의 삶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기 위한 기회의 시간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기 위하여 오늘도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마6:19,20). 이 말씀 속에는 이 땅의 삶이 영원하지 않으니, 영원한 삶을 위해 보물을 쌓고 영원한 삶을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집을 사려고 노력합니다. 노후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반드시 늙고 병들어 일할 수 없는 날이 올것이기에 노후를 준비하는 삶은 지혜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노후의 삶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리 길지 않음에도 그 날들을 위해 준비하며 살아간다면, 하물며 영원한 삶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나의 노후를 위해 연금을 들고, 집을 사놓지 않으면 불안 하듯이, 영원한 삶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것이 없다면 우리는 진짜 염려해야 합니다. 영원한 삶은 나와 상과 없는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분명한 삶의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