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과 리브가의 근심
창세기 26장 34-35절
34에서는, 마흔 살이 되는 해에, 헷 사람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았다. 35이 두 여자가 나중에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된다.(창26:34-35)
34 When Esau was forty years old, he married Judith daughter of Beeri the Hittite, and also Basemath daughter of Elon the Hittite. 35 They were a source of grief to Isaac and Rebekah.
오늘 본문은 아주 짧지만 에서가 40세가 되던 해에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여서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결혼에 대하여 왜 이삭과 리브가는 축복하며 기뻐하기보다 근심하였을까요?
우선 에서가 이방여인을 만나서 결혼한 것은 부모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에서 자신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집 안에 있기보다 들에서 사냥을 하면서 생활하기를 좋아하였고, 그러다보니 그는 밖에서 헷 여인인 유딧과 바스맛을 만나 그들과 결혼하게 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결혼은 에서가 부모의 뜻과 상관없이 온전히 세상적인 정욕에 눈 멀어 하게 된 결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삭의 결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40세에 자기 아내 리브가를 얻기 위하여 종을 보내 800km가 넘는 곳까지 찾아가 같은 혈통에 있는 신앙의 여인을 아내로 얻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신앙을 지켜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이삭의 눈에 에서가 결혼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해 가는데 있어서 신앙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근심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맏아들은 장자의 축복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신앙의 유산을 이어갈 책임이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에서는 너무나 다른 길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약속의 자손들 가운데 이방여인들과 결혼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요셉도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았지만 성경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나중에 이스라엘 지파 중에 각각 하나의 지파들을 이루어 약속의 땅을 배분받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경에서 문제 삼는 것은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결혼하는 당사자의 신앙이 훨씬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비록 이방여인과 결혼했지만 신앙을 지켰고 신앙의 유산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에서에게는 그런 신앙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에서가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방여인과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여인들을 신앙 가운데로 이끌어 갔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여인들이 조상적부터 섬겨온 우상을 버리게 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믿음의 여인들로 만들어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 자신이 신앙이 없기에 그는 이방여인을 따라갔습니다. 즉 그 여인들이 우상을 섬겨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니 에서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믿음의 유산을 따라갈 리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신앙이 없는 맏아들 에서는 장자의 축복의 권한을 동생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안목의 정욕을 따라 살아갔던 에서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내가 전해야 할 신앙의 유산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히려 안목의 정욕을 따라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부를 누리고 산다 할 찌라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은 실패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그 인생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복 주시는 인생이 됩니다.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요, 낮은 자 같으나 높은 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따라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