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책임과 섬김
사도행전 11장 27-30절
27 그 무렵에 예언자 몇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왔다. 28 그 가운데 아가보라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일어나, 온 세계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바로 그 기근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들었다. 29 그래서 제자들은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몫을 정하여, 유대에 사는 신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30 그들은 그대로 실행해서, 바나바와 사울 편에 그것을 장로들에게 보냈다.
당시 교회에는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자는 단순히 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당시의 예언자(헬라어: 프로페타이)는 교회의 한 직분이었는데, 성령의 영감을 받아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성경 교사와 같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 안에서는 이 예언자들은 사도들 다음으로 아주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장래의 일도 예언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가보라는 한 예언자가 안디옥 교회에 와서 온 땅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근은 실제로 글라우디오(Claudius, AD 41-54) 황제 때 일어났습니다. 이 예언을 들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하여 형편에 따라 자발적으로 구제금을 모아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바울)은 이 구제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아가보란 예언자는 예루살렘에서 사역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안디옥을 방문했을 때 갑자기 성령이 임하시고 안디옥 교회에 속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언하게 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하필이면 성령님은 안디옥에서 아가보에게 예언을 하게 하였을까요? 그것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이 땅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사회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개교회의 부흥과 성장만이 교회의 존재 목적은 아닙니다. 때로 성령님이 이 땅을 섬기라고 마음을 부어주실 때 우리는 이 땅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환난을 당하는 자를 돌보며,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둘째, 그들은 형편에 따라, 몫을 정하여 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섬김은 형편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각자의 형편에 맞게 섬기면 됩니다. 하나님은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두 달란트만큼만 기대하십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만큼 남기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구제와 섬김은 내 마음에서 나오는 자원함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형편에 따라 섬겨가면 됩니다. 또한 '형편에 맞게 섬기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분량으로 섬기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분량을 정하며 모두 섬기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분량에 따라 섬김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이 땅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 그리고 나의 형편에 따라 섬김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주님, 교회가 감당할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로 나아가게 하옵시고, 교회가 이기적이라고 욕을 먹는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빛을 발하는 교회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소망교회가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들이 있다면 알게 하시고, 그 일들을 감당해 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금년에 시작하는 호주 원주민 사역에도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고 놀라운 열매들이 있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