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선물, 축복
창세기 43장 29절
요셉이 둘러보다가, 자기의 친어머니의 아들, 친동생 베냐민을 보면서 "이 아이가 지난번에 그대들이 나에게 말한 바로 그 막내 아우요?" 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귀엽구나! 하나님이 너에게 복 주시기를 빈다" 하고 말하였다.(창42:29)
옛날 박씨 성을 가진 백정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양반이 백정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이놈, 상길아. 여기 고기 한 근만 가져오너라." 백정은 고기 한 근을 썰어 내어주었습니다. 잠시 후 다른 양반이 찾아와 말하였습니다. "여보게 박 서방, 여기 고기 한 근 갖다 주게." 백정은 고기를 먼젓번 양반의 것보다 큼직하게 썰어 그 양반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첫 번째 양반은 벌컥 화를 냈습니다. "예끼, 이놈아!! 어찌하여 저 양반의 것은 크고 내 것은 이리도 작단 말이더냐!!" 그러자 백정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대감께서 사 가신 고기는 상길이가 드린 것이고, 저 분이 사 가신 고기는 박 서방이 드린 것이온데 어찌 같을 수가 있으리이까?" 이 말을 들은 양반은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같이 입에서 나가는 말이라도 어떤 말은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복된 말이 있는 법이죠. 주님은 우리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복된 말을 하면 그 말이 타인에게도 복이 되고, 나에게도 복이 되어 돌아오지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면 상대에게는 상처를 주고, 나에게도 정죄와 비판으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이집트로 온 베냐민을 보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도 없었고, 친동생인 베냐민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줄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축복의 말”이었습니다. 세상의 가장 큰 선물은 축복의 말입니다. 요셉은 베냐민에게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빈다”(29)라고 축복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형식적인 인사 차례로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마음을 담아 축복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인사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이 베냐민에게 빌었던 축복은 단순한 인사말이었을까요? 아니면 마음에 기원을 담은 축복이었을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온 마음을 다해 베냐민을 축복했을 것입니다. 축복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진정으로 축복의 대상이 복 받기 원하는 마음으로 축복할 때 그것이 복이 됩니다.
오늘도 축복의 말을 전하기 원합니다. 내 자녀에게, 가족에게, 목장 식구들에게,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에게 마음을 담아 칭찬하고 격려하며 축복하기를 바랍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복된 말이 공동체를 복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내 가족과 이웃과 교회를 복되게 한다는 소망을 가지고 복된 말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