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개미들이 자기 몸의 몇 배가 되는 죽은 메뚜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먹이를 발견했다고 기뻐하면서 동료 개미들과 힘을 합쳐 옮기려고 하는데 너무 무거워 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이가 그 벌레를 들어서 개미집 앞으로 옮겨주었습니다. 개미들은 먹이가 하늘로 사라졌을 때 크게 실망하였지만,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앞에 있는 메뚜기를 보고 ‘기적’이라고 외칩니다. 처음 개미들이 먹이를 빼앗겼을 때는 원통하고 속상했지만, 그들의 집에 돌아왔을 때 먹이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자기들의 삶에 일어난 행운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개미들은 그저 기적을 보았고 경험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기적에는 개미들은 미처 깨닫지 못한 그들을 돕고 싶은 꼬마 아이의 따뜻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행운과 우연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내 삶에도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기적을 좋아하고 자신들의 삶에도 행운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삶에 그러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즉 기적이 있으면 좋겠지만 믿지는 않기에 기적에 자신의 삶을 거는 모험을 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 기적을 믿지 않기에 모험하지 않고 그래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기적은 있습니다. 우리가 기적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기적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면 기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기적에 대한 바른 인식은 무엇일까요?
첫째, 기적은 행운(Lucky)이 아니고 표징(Sign)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적을 우연과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적을 구할 때 우연과 같은 행운을 구합니다. 예를 들면 로또(Lottery)를 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적은 행운이 아닙니다. 성경은 기적을 표징이라고 부릅니다. 즉 기적은 그냥 기적이 아닌 어떤 교훈을 목적으로 하는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유 있는 기적이 아니면 기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읽은 오병이어의 기적도 사람들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를 남기는 기적을 체험하고 주님을 쫓아다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피하시면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오병이어의 표징의 이유를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원하도록 있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유 있는 기적을 구하시고, 기적을 경험할 때 기적에 담긴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기적이 믿음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하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적은 믿음과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지만, 두 달 뒤 마라의 샘물 앞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돌려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런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으면 믿어야 하는데 어려움의 때가 되면 감격은 사라지고 두려움에 원망만 가득하더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어떤 이는 기적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도 복음만 듣고 하나님을 믿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래서 알게 되는 것은 기적과 믿음은 별개입니다. 기적을 통해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기적을 경험해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기적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기적은 오늘도 존재합니다. 기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신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에도 기적을 경험하려면,
첫째,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구체적으로 기적을 구하여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순종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이 없다고 원망하지 마시고, 기적을 주셔야만 하는 이유 있는 그리스도인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