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과 선택 그리고 구원
(로마서 9장 14-29절)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두려움 가운데 한 가지는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기독교 신경전문학과 교수이며 기독교 상담가인 이성훈 교수는 이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원초적인 죄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즉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께 쫓겨나고 버림받으면서부터 이 버림받음과 거절감에 대한 상처와 두려움이 생겨났다는 것이죠. 어렸을 때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웁니다. 그 울음의 이유가 바로 버려진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셨다고 하면 어떨까요? 우리 안에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두려움과 불편한 감정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것 아닌가?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선택하신 것이 아니고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버리셨단 말인가?’ 오늘 본문 14절은 이러한 반감에 대하여 “그럴 수 없습니다.”(14)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하여 우리가 불평할 수 없다고 말할까요?
첫째, 택하심의 원리에 따른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11). 하나님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야곱을 선택하시고 에서를 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살아있게 하시려고”(11)라고 말합니다. 즉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택하지 않으신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행의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이유라는 것이죠. 즉 우리를 택하여 주신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 버림받음은 내 죄의 결과이지 하나님이 택하지 않음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먼저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버린 사람이 왜 나는 선택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면 그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택하심은 자비하심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16). 바울은 이 택하심의 근거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있고 그 자비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율성 때문입니다. 즉 자비를 베푸는 것은 전적으로 베푸는 자의 자유이지 받는 자가 따져 물을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는 불평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20) 그러면서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 만들어진 그릇이 토기장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따져 물을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오히려 당연히 멸망 당할 우리들에 대하여 꾸준히 참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그리고 구원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부족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자녀삼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찬양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택함을 받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믿었다는 그 사실이 택함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구원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 오해를 합니다. 내가 믿고 선택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택하여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주인으로 영접하였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택함을 받은 증거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는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그 믿음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죠. 특히 우리는 이방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러 주셨으니 은혜 중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24절)
목장 나눔 질문: 내가 구원을 받기까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그리고 일하심을 경험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