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이레
창세기 22장 12-19절
13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14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다급히 부르며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1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시기 위해 시험하신 것이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너무 기뻐 감사의 찬양의 드렸을 것이며, 심적인 고통이 컸었던 만큼 어쩌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이후에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숫양 한 마리가 뿔이 수풀에 걸린 채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번제로 드렸습니다. 원래 그곳은 이삭이 번제로 드려져 불살라져야 했을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을 대신해서 숫양을 준비하셔서, 그 숫양이 제단 위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이 숫양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내가 죽을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대속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하고 지켜보던 아브라함은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부터 이 숫양을 대속물로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숫양을 제물로 바치며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대속”입니다.
준비하신 하나님이란 뜻의 ‘여호와이레’가 우리에게 주는 삶의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여 주십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6:32,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에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염려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6:31,32). 인생을 살다보면 염려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염려를 내려놓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빌4:6). 셋째는 순종의 삶을 사는 자의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깨닫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나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을 경험하고 간증하길 원합니다.